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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1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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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 초고의 의미
글쓴이 : 보성선… 조회 : 3,396
가. 보성선씨(寶城宣氏) 600년 역사에 처음으로 족보를 만들기 위해 지금으로부터 335년 전인 신유년(1681)에 장흥 봉림사에서 시조공 퇴휴당의 후손들이 모였다. 비록 족보는 완성하지 못했지만 보성선씨 문중 최초의 역사 기록인 신유초고 서문과 칠언시를 남겨 후손들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신유초고는 보성선씨 역사 기록의 시작이기에 큰 의미가 있는 기록이다.

나, 1681년 신유초고는 능성공 7대손이신 휘 응뢰님께서 서문을 쓰셨고, 능성공 7대손 휘 南斗과 능성공 6대손 휘 복주님께서는 칠언시(七言詩)를 쓰셨다 그러나 조도선씨들은 그들의 족보에 휘 응뢰님 서문과 휘 남두님의 칠언시를 인용하였으나 휘 복주님의 칠언시는 전혀 기록하지 않고 언급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가 지금도 궁금할 뿐이다.

 다. 휘 복주님의 칠언시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디.

              諱 복주님의 칠언시 
古來文蹟如新月(고래문적여신월)예로부터 문적(족보)은 새로 돋는 달과 같아
流照殘孫後目中(유조잔손후목중)잔약한 후손 밝게 비추어 눈앞에 훤하게 하네
血脈相連分大夏(혈맥상연분대하)서로 연결된 혈맥 대하(중국)에서 나뉘어 오니
吾宣皆祖按廉公(오선개조안렴공)우리 선가  모두 안렴공을 시조로 한다네
능성공 6대손 복주(復周) (辛酉年, 16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