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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1년(신유)초고

Ⅰ,신유초고(辛酉草稿)의 의의

보성선씨(寶城宣氏) 600년 역사에 처음으로 족보를 만들기 위해 지금으로부터 334년 전인 신유년(1681)에 장흥 봉림사에서 시조공 퇴휴당의 후손들이 모였다. 비록 족보는 완성하지 못했지만 보성선씨 문중 최초의 역사 기록인 신유초고 서문과 칠언시를 남겨 후손들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신유초고는 보성선씨 역사 기록의 시작이기에 큰 의미가 있는 기록이다.


Ⅱ,신유초고(辛酉草稿)의 서문(序文)

1, 휘 응뢰님 서문

◇ 원문


族譜, 何爲而作也? 憂世系之失其傳而作也. 古人有言: “吾東方宣氏來自中國” 而或曰: “參於八學士之來” 或曰: “參於七大臣之來” 流傳之說, 雖不可盡信, 余嘗觀《漢書》 高祖之二年有曰: “宣虎, 以擊陳豨之功, 封千戶侯.” 又有“宣義, 亦以功封千戶侯, 而逮至漢末, 中國之宣, 多竄海東.” 以此言之, 則八學士·七大臣之說, 雖不可徵, 而自中國之說, 庶可驗矣.

嗚呼! 當初一源, 分爲百派, 蔓延數州者, 其麗不億, 則豈非吾祖宗積德累仁之攸致歟? 按廉使之立祠酬勳, 旣載於輿地; 楡城君之畵像褒功, 昭著於玉冊, 則元非後昆所可槪論, 而至若南原府使諱安景四代孫重倫氏, 以穿楊妙技, 參於重試之魁; 六代孫世徽氏, 亦以文章大才, 居於謁聖之元. 此則拔萃選及第, 而其餘名參龍虎之榜, 身登司馬之門者, 固不可彈記也. 雖然先世族譜失亡之後, 古人已去, 後孫益遠, 則此後世系, 孰從而知之?

玆與同宗同志者, 寶城居宣燦斗·南斗·文翮, 及長興居宣衡重·以禮·衡懿·斗徵等, 期會于鳳林寺, 參考門長宣復周氏若干輯錄, 又考諸家之遺籍, 纂成是譜. 噫! 我同源一派人, 觀此世系, 則其無追遠敦睦之意乎? 其中或有分派之未詳者, 故別錄于族譜之末, 以爲日後知者之考正云爾.

 崇禎再辛酉十月十五日,  陵城公七代孫應賚謹序.


◇ 번역

족보는 왜 만드는가?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될 것을 염려하여 만드는 것이다. 옛 사람들의 말에 “우리나라의 선씨는 중국에서 왔다.” 하였는데, 혹은 팔학사가 올 때에 함께 왔다고 하고 혹은 칠대신이 올 때에 함께 왔다고 한다. 세상에 전해지는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으나 내가 일찍이 《한서》를 보니, 고조 2년의 기록에 “선호라는 사람이 진희를 토벌한 공으로 천호후에 봉해졌다.”는 내용이 있고,

또 “선의라는 사람도 공으로 천호후에 봉해졌는데, 한나라 말에 이르러 중국의 선씨가 대부분 해동으로 귀양갔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 기록을 가지고 말하면 팔학사나 칠대신의 설은 증명할 수 없으나 중국에서 왔다는 설은 거의 증험이 될 만하다.

아! 우리 선씨가 맨 처음 하나의 근원이었던 것이 백 갈래로 나뉘어 여러 고을에 퍼져 사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것은 우리 선조들이 덕을 쌓고 인을 베푼 결과가 아니겠는가? 안렴사는 사람들이 사당을 세워 공을 갚은 사실이 이미 《여지승람》에 실려 있고, 유성군은 화상을 그려 공을 기린 사실이 옥책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으니,

원래 후손들이 대강 추려 논할 수 있는 바가 아니거니와 남원 부사 휘 안경의 4대손 중륜 씨는 백발백중의 묘기로 중시에 장원급제했고, 6대손 세휘님 역시 대단한 문장지재로 알성시의 장원을 차지했다. 이 분들은 유달리 뛰어난 분들을 급제하신 분들 중에서 뽑은 것이고, 그 외에 무과에 급제하고 사마방에 오른 분들을 진실로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이다. 비록 그러나 선대에 족보를 잃어버린 후로 옛 사람은 이미 가고 후손은 더욱 멀어졌으니, 이 후의 세계(世系)를 무엇으로 알 것인가?

이에 동종의 뜻을 같이 하는 분으로 보성에 사는 선찬두·남두·문핵과 장흥에 사는 선형중·이례·형의·두징 등과 함께 봉림사에 정기적으로 모여서 문장 선복주 씨가 약간이나마 수집해 기록해 놓은 것을 참고하고 또 여러 대가가 남긴 서적을 상고해 이 족보를 만들었다.
아! 우리 같은 근원이요 한 줄기인 사람들이 이 세계(世系)를 보면 그 조상을 추모하고 돈목하는 뜻이 없겠는가? 그 가운데 혹 분파가 상세하지 않음이 있는 것은 우선 족보의 끝에 별록해 놓음으로써 일후에 아는 사람들의 고정할 거리로 삼노라.
숭정 재신유년 시월 십오일에 능성공 7대손 응뢰는 삼가 쓴다.


2, 휘 남두(諱 南斗)님의 칠 언시(七言 詩)

吾門請遡先公說(오문청소선공설) 우리 가문 선조의 근원을 알아보세
來自中原幾百年(자래중원기백년) 중국에서 오신지 수백 년 되었다네
按使楡城前後系(안사유성전후계) 안렴사와 유성군이 전후로 이어져
白蓮丹桂弟兄聯(백련단계제형련) 훌륭하고 성공한 형제들 연달았네
醇儒碩士皆豪傑(순유석사개호걸) 순수하고 뛰어난 선비 모두 호걸이라
獬笏峨冠互續連(해홀아관호속연) 해홀의 높은 벼슬 서로 이어졌다네
却恐世遐猶泯滅(각공세하유민멸) 세대가 멀어지면 아주 없어질까 두려워
强修遺譜示來賢(강수유보시래현) 애써 족보 만들어 후손에게 알린다네

능성공 7대손 南斗 (辛酉年, 1681)


2, 휘 복주(諱 復周)님의 칠언시(七言 詩)

古來文蹟如新月(고래문적여신월) 예로부터 문적(족보)은 새로 돋는 달과 같아
流照殘孫後目中(유조잔손후목중) 잔약한 후손 밝게 비추어 눈앞에 훤하게 하네
血脈相連分大夏(혈맥상연분대하) 서로 연결된 혈맥 대하(중국)에서 나뉘어 오니
吾宣皆祖按廉公(오선개조안렴공) 우리 선가 모두 안렴공을 시조로 한다네

능성공 6대손 복주(復周) (辛酉年, 16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