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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공신록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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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은 우리 역사상 미증유의 국난 이었다.
국난극복 사상 가장 어려운 고비를 넘긴 것도 사실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완전무결한 기습 이었다 조선조가 건국한지 2백년 그사이에 단 한 번도 전란이 없었다. 임진왜란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빛어낸 참화 였다. 도적이 이 땅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나라 안은 지옥의 아비규환일 수밖에 없었다. 백성들은 모두 어육이 되어 피를 흘려야했다.
의로운 선비들이 붓을 던지고 칼을 들어 벌떼같이 일어나서 흉악한 도적들을 나라 밖으로 쫓아냈으니 7년 이라는 세월이 전쟁의 와중에 휘말려들었다. 그 참혹한 일들을 어찌다 기록할 수 있었는가.
이조 5백년간에 28회에 걸친 공신책록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임진왜란 7년 기간에 관련된 공신은 선 무.호성.청난 세 종류다.
선무공신은 왜적과의 전투 에서 공을 세운 분들이고, 호성공신은 선조대왕의 파 전에 호종 또는 기여한 분들이고 청난공신은 이몽학 의 반란을 토평 하는데 유공한 분들이다. 우리 보성선씨 선조들의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해 싸웠으나 업적의 기록이 없어 묻혀버렸다. 보성선씨는 짧은 역사 속에서 많은 충신들이 있으나 오충사에 위패가 모셔진 다섯 분외에 임진록에 기록된 공신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임진왜란 때 싸우신 선무공신중 선무1등공신 위패가 모셔저 있으나 선무2등공신과 선무3공신은 위패조차 없어 안타까움일 뿐입니다. 후손들이 오충신<선 윤지,선 형,선 거이,선 세강,선 약해>의 업적은 기록을 통해 알려져 있으나 나머지 분들은 업적 기록은 없으나 임진록의 공신명단에 기록된 인물들입니다.

선무공신1등(宣武功臣一等) 2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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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공신2등(宣武功臣二等) 1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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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공신3등(宣武功臣三等)8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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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21

湖南節義錄 騰戰 諱啣 一覽(호남절의록 등전 휘함 일람) 보성선씨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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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壬亂功臣遺史誌에서

그외에 선씨가문을 빛낸분들

선 안혁(宣 安赫)은 시조(선 윤지)의 아들로 태종때 호조참판을 역임했다. 이분의 묘소가 봉천동에 있었으나 전라도 보성으로 이장되었다.
선 화(宣 和) 호조참판 광유의 아들로서 태종때 여산군수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진정으로 고을 수령을 두 번이나 지내셨다.
선 청유(宣 淸裕) 문종때 순무사(巡撫使) 선 국충(宣 國忠) 세조때대사성(大司成)
선 세휘(宣 世徽) 세강의 아들, 문신으로 전적(典籍)과 춘추관(春秋館)의 기사관(記事官)을 거쳐 장령(掌令)을 지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