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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작성일 : 16-11-3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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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감영지(全羅監營誌) / 전라남도 역대도지사 자료
연도 : 1790 관련되신 분 : 시조공
편저자(저자) : 소장처(관련) : 전라북도청
 
Cap 2016-11-30 16-13-36-632.jpg

 
 
 
宣允祉는 우왕 8년(1382)에 秋冬番으로 전라도 안렴사에 임명되었다. 선윤지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조선왕조실록』에서, 그것도 『순조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순조 31년(1831) 9월1일 예조는 다음과 같이 임금에게 아뢰었다.
故 監司 선윤지는 명나라의 학사로서 우왕 8년(1382)에 司命을 받들고 우리 나라에 왔다가 그대로 寶城을 관향으로 하였습니다. 그 후손인 절도사 宣若海는 崇禎 4년(1631년)에 사신으로 심양에 들어가 한마디 말로 강성한 오랑캐를 꺾어 굴복시켰으며, 安東營將 宣世綱은 인조 14년(1636)의 병자호란 떄 左兵使 許完의 중군이 되어 雙嶺에서 전사하였습니다.
명나라 사람의 자손으로 또 명나라를 위해 적을 꾸짖고 몸을 바친 것이 이와 같이 환히 드러났으니, 청컨대 그 후손으로 하여금 皇壇에서 望拜하는 반열에 들어와 참례하도록 하소서. 이보다 한 해 전인 순조 30년 10월에도 선윤지의 후손들의 청을 받아들여 예조에서 전 감사 선윤지 등 5세 賜額을 五忠이라고 이름을 지어 내려 주었다. 이로써 선윤지가 감사를 지낸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감사가 全羅監司였음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확인된다. 즉 동서 제40권, 전라도 보성군편의 인물조에는 고려인으로 선윤지를 싣고 있는데 그 내용 다음과 같다.
보성군이 왜구의 침입을 받아 옮겨서 (사람들이) 內地로 가서 살게 되었다. 윤지가 안렴사가 되어 백성들을 위로하고 재물을 모아 군내 사람들을 안정시키니 지금까지 이를 칭찬하고 있다. 선윤지가 전라도 안렴사로 재임 중이었던 우왕 8년(1382) 10월에는 왜적이 남원을 침범하였으며, 또 鎭浦에도 왜선 50척이 쳐들어왔다. 海道元帥 鄭地가 이를 격퇴하고 群山島까지 추격하여 적선 4척을 노획하였다. - 전라남도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