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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작성일 : 16-11-1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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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정유일기(續丁酉日記), 무술일기(戊戌日記
연도 : 1596 관련되신 분 : 선의문(宣義問
편저자(저자) : 소장처(관련) : 국보 제76호
◇국보 제76호 속정유일기(續丁酉日記) ‘ 6책 31쪽, 32쪽
陸巡見島內 則多有形勢 欲爲留陣
造家之計
三十日丁亥 晴而東風 多有雨態 朝下坐造
家處 諸將來謁 海南倅亦來 傳附
賊人所爲 早使黃得中 率耳匠
往于島北峯底 造家材木斫來
晩海南附賊鄭銀夫及金信雄妻 倭
奴指示殺戮我人者二名 士族處女
奪奸金愛南 幷斬梟 夕梁謐
以道陽場蟲穀任自分給事 決杖六十
  
十一月初一日戊子 雨雨 朝毛鹿皮二令 浮水而
來 故欲爲唐將之贈 可恠 未時雨則霽 而北
風大吹 舟人寒苦 余縮坐船房 心思極惡 度
日如年 悲慟可言 悲慟可言 夕北風大吹 達夜搖舟 人
不敢自定 汗發沾身
 
初二日己丑 陰而不雨 早聞右水使戰船
爲風所漂 掛礖折破云 極爲痛憤 兵
船軍官唐彦良 決八十杖 下坐船滄
監造橋 因上新家立處 乘昏下船
三日庚寅 晴 早上新家 宣傳官李吉
元 以裵楔處斷事入來 裵也已至
星州本家 而不往本家 直來于此 其
循私之罪極矣 送于鹿島船
 
四日辛卯 晴 早上新家造立處 李吉
元留 珍島郡守宣義問來
五日壬辰 晴 暖如春日 早上新送處 日暮  
◇ 국보 제76호 무술일기(戊戌日記) 7책 13쪽, 14쪽
 
二十八日庚戌 晴而西風大吹 大
小船不得出入
 
二十九日辛亥 晴
三十日壬子 晴 是夕 王游擊 福
游擊 李把總率百餘船
到陣 是夜燈燭炫煌 賊徒
破膽
 
十月初一日癸丑 晴 都督趁曉
到劉提督處 暫時相話
 
初二日甲寅 晴 卯時進兵 我
舟師先登 午時至相戰
多致殺賊 蛇渡僉使逢丸
戰亡 李淸一亦爲致死 薺
浦萬朱義壽 蛇梁金聲玉 海
南柳珩 珍島宣義問 康津宋尙
甫 逢丸不死
 
初三日乙卯 晴 都督因劉提督之密
書 初昏進戰 三更至搏擊
沙船十九隻 唬船二十餘隻被焚 都
督之顚倒 不可言 安骨萬戶禹
壽中丸
 
初四日丙辰 晴 早朝進船攻賊 終
日相戰 賊徒蒼黃奔走
初五日丁巳 晴 西風大吹 各船艱難
浮泊度日
 
初六日戊午 晴而西北風大吹 都元 帥送軍官致書曰 劉提督欲爲
병신년 (1596년, 선조 29년)
==== 정월 ====
15일 맑고 따뜻했다.
날이 샐 무렵 망궐례를 드렸다. 낙안 선의문과 흥양을 불러 아침을 함께 먹었다. 늦게 대청에 나가서 업무를 보고 서류를 처리한 다음, 투항한 왜인들에게 술과 음식을 먹였다. 낙안과 흥양의 전투선과 군기, 부속물, 사부와 격군 등을 점검하니 낙안이 더욱 엉성했다고 한다. 저녁 달빛이 한결 더 맑았다. 풍년이 들 징조하고 했다.
==== 2월 ====
24일 맑음.
식사 후에 나가서 둔전에서 받은 벼의 작석을 감독했다. 우수사 권준이 들어왔다. 오후 4시경에는 비바람이 크게 불었다. 둔전에서 받아들인 벼를 다시 작석한 결과 창고에 들여 쌓은 것이 170여 섬으로, 30여 섬이 줄었다. 낙안 선의문이 교체되었다는 기별이 왔다.방답과 흥양이 왔다. 본영으로 배를 내보내려다가 비바람으로 중지했다. 밤세도록 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몸이 노곤했다.
병신년 (1596년, 선조 29년)
 
정유년 (1597년, 선조 30년)
==== 11월 ====
4일 맑음.
일찍 새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갔다. 이길원이 머물렀다. 진도 군수 宣義問선의문이 왔다.
무술년 (1598년, 선조 31년)
==== 10월 ====
2일 맑음.
오전 6시에 진격했는데, 우리 수군이 먼저 나가서 정오까지 싸워 적을 많이 죽였다. 사도 첨사 황세득이 탄환에 맞아 전사하고, 李淸一이청일도 전사했다. 제포만호 朱義壽주의수와 사량만호 金聲玉김성옥, 해남 현감 柳珩유형, 진도 군수 宣義問선의문, 강진 현감 宋尙甫송상보 등은 탄환에 맞았으나 죽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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