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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작성일 : 16-11-1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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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도 : 1830 관련되신 분 : 선약해
편저자(저자) : 소장처(관련) : 국보151호
순조실록 31권, 순조 30년 10월 9일 계사 2번째기사1830년 청 도광(道光) 10년
고 감사 선윤지 등 5세의 사액을 오충이라고 내리다
고 감사(監司) 선윤지(宣允祉) 등 5세(世)의 사액(祠額)을 오충(五忠)이라고 내렸는데, 예조에서 그 후손들의 상언(上言)으로 인하여 청하였기 때문이었다.
순조실록 32권, 순조 31년 9월 1일 경술 1번째기사1831년 청 도광(道光) 11년
선윤지의 후손들이 발휘한 충의를 포상으로 보답하기를 예조에서 건의하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고(故) 감사 선윤지(宣允祉)는 명(明)나라의 학사(學士)로서 홍무(洪武)년 에 사명(使命)을 받들고 우리 나라에 왔다가 그대로 보성(寶城)을 관향으로 하였었는데, 그 후손 절도사 선약해(宣若海)는 숭정(崇楨) 4년에 사신으로 심양(瀋陽)에 들어가 한마디 말로 강성한 오랑캐를 꺾어 굴복시켰으며,
안동영장(安東營將) 선세강(宣世綱)은 병자년 호란(胡亂)때 좌병사(左兵使) 허완(許完)의 중군(中軍)이 되어 쌍령(雙嶺)에 이르러 전망(戰亡)하였습니다. 명나라 사람의 자손으로 또 명나라를 위해 적을 꾸짖고 몸을 바친 것이 이와 같이 환히 드러났으니, 청컨대 그 후손으로 하여금 황단(皇壇)의 망배(望拜)하는 반열에 들어와 참례하도록 하소서."
하였는데,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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