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물 제604호 장말손 적개공신교서(張末孫 敵愾功臣敎書 조선 세조 13년(1467)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조봉대부(朝奉大夫) 내섬시 첨정(內贍寺僉正) 장말손(張末孫)에게 내리는 교서
왕은 다음과 같이 이르노라.
주(周)나라는 기상(旂常)의 기록을 두었고 한(漢)나라는 대려(帶礪)의 맹서를 폈으니, 모두 당시에 충성을 권면하고 후세에 본받기를 권장하려는 까닭이었다.
오직, 그대는 품성과 자질이 순실하고 학문과 식견이 통달하였다.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자못 명성이 있었으며, 충의(忠義)의 도(道)를 실로 마음에 새겨 잊지 않았다.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몰래 역모(逆謀)를 품고 감히 마음대로 날뛰어 흉포한 기염(氣焰)이 심히 성하였다. 내가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토벌(討伐)하게 하였는데, 이길 모책을 신묘하게 운용하니 적의 기세가 곧장 수그러들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괴수(魁首)를 원문(轅門) 아래에 잡아 바치니, 요망한 기운이 깨끗하게 맑아졌고 삭방(朔方) 지역이 안도(安堵)하게 되었다. 그대가 이때에 진북 장군(鎭北將軍) 강순(康純)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막부(幕府)의 주책(籌策)에 참여하여 돕고 분주하게 힘을 바쳤도다. 그러므로 그대를 책훈(策勳)하여 적개 이등 공신(敵愾二等功臣)을 삼노라.
이에 누각을 세워 초상을 그리고 비석을 세워 공을 기록하며, 그 부모와 처자에게 벼슬을 주되 1계급을 초천(超遷)하고, 자식이 없는 자는 생질과 사위를 1계급 초천하고, 적자(嫡子)와 장자(長子)는 세습(世襲)하여 그 녹(祿)을 잃지 않게 하고, 자손들은 정안(政案)에 기록하여 ‘적개 2등 공신 말손의 후손’이라 하여, 비록 죄를 범하였더라도 영세(永世)토록 용서하라.
이어서 반당(伴倘) 8인, 노비(奴婢) 10구(口), 구사(丘史) 5구, 전지(田地) 100결(結), 은(銀) 25냥(兩), 의(衣) 1습(襲), 내구마(內廐馬) 1필(匹)을 내려 주니, 이르거든 수령하라. 그리고 더불어 공(功)이 같은 자는 아울러 뒤에 기록한다.
아아! 함께 복록을 누리는 뜻은 이미 옛 전장(典章)에 크게 보이고, 영원히 보존하는 마음은 거의 후손들에게 쇠하지 않으리라. 그러므로 이에 교시하노니 의당 잘 알았으리라 생각된다.
1등(一等)
이준(李浚), 조석문(曹錫文), 강순(康純), 어유소(魚有沼), 박중선(朴仲善), 허종(許琮), 김교(金嶠), 남이(南怡), 이숙기(李淑琦), 윤필상(尹弼商)
2등(二等)
김국광(金國光), 허유례(許惟禮), 이운로(李雲露), 이덕량(李德良), 배맹달(裵孟達), 이형손(李亨孫), 이종생(李從生), 이서장(李恕長), 김순명(金順命), 김관(金瓘), 구겸(具謙), 박식(朴埴), 김백겸(金伯謙), 오자치(吳自治), 정숭로(鄭崇魯), 장말손(張末孫), 손소(孫昭), 어세공(魚世恭), 윤말손(尹末孫), 오순손(吳順孫), 심응(沈膺), 김면(金沔), 맹석흠(孟碩欽)
3등(三等)
이보(李溥), 한계미(韓繼美), 이종(李徖), 선형(宣炯), 민발(閔發), 오자경(吳子慶), 최유림(崔有臨), 우공(禹貢), 정종(鄭種), 정준(鄭俊), 이양생(李陽生), 차운혁(車云革)
성화(成化) 3년 11월 일
예천(醴泉)의 비(婢) 춘월(春月)의 소생은 권향(權香), 권진(權眞), 옥춘(玉春), 춘이(春伊), 막분(莫分), 조시(早時)이다.
죽산(竹山)의 비 영덕(永德)의 소생은 영대(永代), 천화(賤花), 영분(永分), 순덕(順德)이다.
□ 보물 제716호 김길통 좌리공신교서(金吉通 佐理功臣敎書) 국역 조선 성종 3년(1472)
순성좌리공신록(純誠佐理功臣錄)
순성 좌리공신 숭정대부 행 호조판서 월천군 김길통(純誠佐理功臣崇政大夫行戶曹判書月川君金吉通)
임금의 이상적인 정치는 반드시 세상에 드문 영웅을 의뢰해야 하고 신하가 충성을 다하면 의당 특별히 내려주는 은총을 펴야하니, 이는 공평한 도의에서 연유되고 사사로운 은혜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경(卿)은 젊어서는 나라를 경영하는 재능을 지녀 많게도 대정(大庭)에서의 보답은 으뜸이어서, 단정하고 엄숙하여 지조가 있고 청렴하고 개결하여 사치스러움이 없었다.
기상은 바람과 서리를 압도하여 위엄과 기강을 사헌부에서 진작시키고, 충성은 해와 달이 걸려 있는 듯해 경계가 되는 유익한 말을 사간원에서 진달하였으며, 관서(關西)에서는 바지가 있다는 노래가 불려졌고 호남(湖南)에서는 장막을 걷은 교화가 전파되었으며, 예조에 (참판으로) 들어가서는 오례(五禮)를 보좌했었고 호조의 판서가 되어서는 사민(四民)을 안정되게 하였으며, 여러 번 빛나는 직위를 거치면서 움직일 적마다 특별히 알려짐이 있었다
내가 하찮은 자질로 큰 기업을 계승하여 지키는데 경이 이러한 때에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아니하고 나의 다스림을 도와 오늘의 아름다움에 이르게 하였다. 그러니 어찌 크게 드러내 보이는 의식을 거행하여 비상(非常)한 공적을 갚지 않겠는가.
공을 책훈(策勳)하여 좌리 4등 공신(佐理四等功臣)으로 삼아 각(閣)을 세워 모습을 그리고 비(碑)를 세워 공을 기록하게 한다.
그리고 경(卿)의 부모(父母)와 처자(妻子)의 벼슬을 한 자급 특진시키며 적장(嫡長)은 세습(世襲)하게 하여 그 녹봉을 잃지 않게 하고, 자손(子孫)은 정안(政案)에 기록하기를, “좌리 4등 공신 김길통의 후손은 죄를 범한 일이 있더라도 영세(永世)토록 사유(赦宥)를 받게 하라.”고 기록하고, 인해서 반당(伴倘) 4인(人), 노비(奴婢) 2구(口), 구사(丘史) 2명(名), 전(田) 10결(結), 표리(表裏) 1단(段), 내구마(內廐馬) 1필을 내려주니 이르거든 받으라. 아들이 없는 자는 생질(甥姪)이나 여서(女婿)의 (벼슬을) 한 자급 올려주라. 그리고 공훈이 같은 자를 함께 뒤에다 기록한다.
아! 산이 숫돌 같이 되고 하수가 띠 같이 될 때까지 영원토록 모두 아름답기를 기약하여, 가뭄이 든다면 장맛비를 삼으며 물을 건넌다면 배를 삼아 처음 먹은 마음을 더욱 가다듬도록 바라기 때문에 이렇게 교시(敎示)하니 잘 알 것으로 여긴다.
1등(等)
신숙주(申叔舟) 한명회(韓明澮) 최항(崔恒) 홍윤성(洪允成) 조석문(曺錫文) 정현조(鄭顯祖) 윤자운(尹子雲) 김국광(金國光) 권감(權瑊)
2등(等 )
이정(李婷) 이침(李琛) 정인지(鄭麟趾) 정창손(鄭昌孫) 구치관(具致寬) 심회(沈澮) 김질(金礩) 한백륜(韓伯倫) 윤사흔(尹士昕) 한계미(韓繼美) 한계희(韓繼禧) 송문림(宋文琳)
3등(等)
성봉조(成奉祖) 노사신(盧思愼) 강희맹(姜希孟) 임원준(任元濬) 박중선(朴仲善) 이극배(李克培) 홍응(洪應) 서거정(徐居正) 양성지(梁誠之) 김겸광(金謙光) 강곤(康袞) 신승선(愼承善 이극증(李克增) 한계순(韓繼純) 정효상(鄭孝常) 윤계겸(尹繼謙) 한치형(韓致亨) 이숭원(李崇元)
4등(等)
김수온(金守溫) 이석형(李石亨) 윤필상(尹弼商) 허종(許琮) 황효원(黃孝源) 유수(柳洙) 어유소(魚有沼) 함우치(咸禹治) 이훈(李塤) 김길통(金吉通) 선형(宣炯) 우공(禹貢) 김교(金嶠) 오백창(吳伯昌) 박거겸(朴居謙) 이철견(李鐵堅) 한치인(韓致仁) 구문신(具文信) 이숙기(李淑琦) 정난종(鄭蘭宗) 정숭조(鄭崇祖) 이승소(李承召) 한치의(韓致義) 한보(韓堢) 김수녕(金壽寧) 한치례(韓致禮) 한의(韓嶬) 이영은(李永垠) 이극돈(李克墩) 이수남(李壽男) 이현(李鉉) 신정(申瀞) 김순명(金順命) 유지(柳輊) 심한(沈瀚) 신준(申浚)
성화(成化) 8년 6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