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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선씨를 빛낸분들


작성일 : 16-11-0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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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관유적도첩 (北關遺蹟圖帖)
연도 : 1467/1587 관련되신 분 : 유성군( 宣 炯)/선거이(宣居怡)
편저자(저자) : 소장처(관련) :
□ 출기파적도(出奇破敵圖)
 
어유소(魚有沼, 1434-1489) 장군이 슬기롭게 적군을 물리친 고사를 그린 것이다. 1467년(세조 13) 길주사람 이시애(李施愛, ?-1467)가 반란을 일으키자 조정에서 좌대장(左大將)으로 어유소를 파견하여 토벌하였는데 홍원(洪原), 북청(北靑), 만령(蔓嶺)에서 대전(大戰)을 치렀다. 만령에서 적은 높고 험한 곳을 점령하여 화살을 아래로 내려 쏘게 되니 아군은 감히 올라갈 수 없었다. 어유소는 정예군사를 작은 배에 싣고 푸른 옷을 입혀 풀빛과 구별하지 못하게 한 뒤벼랑을 따라 돌아서 윗봉우리에 이르러 적의 후방을 위에서 굽어보며 공격하였다-적이 크게 놀란 사이 아래의 군사들도 기세를 몰아 이겼다는 이야기이다.
 
 
49. 출기파적도 선형.jpg

 

이시애의 난 토벌에  유성군도 참여 하셨는데  선군(船軍) 동원을 적극 주장하였으며 항해도절도사로서 1,000인의 군졸을 이끌고 오자경(吳子慶)·한계미(韓繼美) 등과 1진을 이루어 난의 평정에 공을 세웠다.
 
 

□ 수책거적도(守柵拒敵圖)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이 임진왜란 발발 전에 말직을 지낼 때에 있었던 일이다. 1587년(선조 20) 경흥도호부 순찰사 정언신(鄭彦信, 1527~1591)이 녹둔도(鹿屯島)에 둔전(屯田)을 설치하였는데 당시 조산만호(造山萬戶)로서 이순신이 그 일을 관장하였다. 가을이 되어 수확을 할 무렵 오랑캐가 침입하여 약탈하려 하자 목책(木柵)을 방어하여 농민을 보호하였다는 이야기이다. 
 
49. 수척거적도 선거이.jpg
 


[그림속의 사료(史料)적 이야기] 
이 순신은 1587년 조산보 만호로서 녹둔도 둔전관을 겸하고 있었다. 이때 여진족이 녹둔도에 쳐들어왔고, 이순신은 사송아(沙送阿)·갑청아(甲靑阿) 등의 적장을 죽여 격퇴시켰고 포로로 잡 혀갔던 백성들을 구해냈다. 그러나 병마사 이일(李鎰)은 이순신을 무고한 죄로 붙잡아 옥에 가두었고, 조선군의 피해만을 조정에 보고하여 백의종군까지 하게 되었다. 이 때에 선거이는 병마사 이일의 계청군관(啓請軍官)으로 있으면서 이순신을 붙들고 눈물을 지으면서 위로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