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 : 인조(仁祖) 3년(1625)에 일어난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이에게 본 공신외에 내린 녹권이다. 이괄은 인조반정 때 공이 많았음에도 2등에 녹훈되어 불만이 많았다.
이에 반란을 일으켜 도성을 점령하였으나 추격하여온 장만(張晩)의 군에 의해 질마재에서 크게 패하고 부하에게 참수 당하였다. 진압된 뒤 토벌에 따른 행상(行賞)을 한 것이다.
이들에 대한 특전으로 1등에게는 3계를, 2등에게는 2계를, 3등에게는 1계를 각각 올려주었으며, 인조 6년(1628) 왕명에 따라 공신 또는 그 적장(嫡長)에게 1계씩 더 올려주었다.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 1등공신 선남일(宣南一))
국역승정원일기 > 인조 3년 을축(1625, 천계 5) > 2월 18일(정유) 윤안형의 무고에 대해 해명하는 행 동지중추부사 안륵의상소
(전략) 황주(黃州)의 싸움에서 역적과 가까이 마주쳤는데 신이 군관(軍官) 2인으로 하여금 큰소리로 외치게 하기를,
‘너희들이 만약 지금 나와 항복한다면 죽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땅히 표창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도원수부의 명령이다.’ 하니, 역적의 진영 서쪽 한구석이 무너지면서 제일 앞장서 이른 자가 두 사람이었는데 하나는 허전(許銓)이고 하나는 송립(宋岦)이었고, 따라온 군병이 1400여 명이었습니다.
항왜(降倭)가 칼을 휘두르며 따라서 추격해 올 적에 신의 군관 지용익(池用艗), 선남일(宣南一) 등이 단병(短兵)을 들고 서로 접전하여 왜병 1명을 참하고 왔습니다. 신은 한창 격렬하게 싸우며 깊이 들어가 관군이 싸움에 진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적군의 군중(軍中)에 잡혀 있게 되었는데, 바로 그날 밤에 용감히 칼날을 무릅쓰고 탈출하여 즉시 도원수의 진영으로 돌아왔습니다.(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