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비쥬얼

이미지Home › 보성선씨 역사 › 선대역사자료 › 읍지

URL복사

읍지


작성일 : 16-10-26 11:29
트랙백
게시판 view 페이지
김해읍지
연도 : 1899 관련되신 분 : 宣天寶 妻
편저자(저자) : 소장처(관련) :
Cap 2016-10-28 13-33-59-992.jpg
 
李氏 慶州人益齋之後孝子生員承增之玄孫而 學生宣天寶之妻也至誠事舅舅老至耋目昏肢痿李氏手匙 進食家甚貧必贍冬夏衣必具朝夕饌其舅患痢李氏嘗糞 以占差劇大米不能食下咽力辦豆米蜜淸晝夜作粥而進 至於二十年舅享百歲而歿葬祭盡誠夫之二妹率十餘眷 而來同爨共織和氣融然鄕里伸訴官門尙未旌美輿情慊歎焉
 
李氏 慶州人이씨는 본관이 경주이니, 益齋之後 孝子生員承增之玄孫 而學生宣天寶之妻也 익재 이제현의 후손이고 효자인 생원 이승증의 현손이며, 학생 선천보의 처이다. 至誠事舅 舅老至耋 目昏肢痿 李氏手匙進食 지성으로 시아버지를 섬겼으니, 시아버지가 늙어 팔순에 이르렀는데, 눈이 어둡고 팔다리가 마비되자 이씨가 손수 음식을 떠서 먹여드렸다.
 
家甚貧必贍冬夏衣 必具朝夕饌 집안이 매우 가난하였으나 반드시 겨울옷과 여름옷을 넉넉하게 해 드렸으며 반드시 조석으로 찬을 갖추어 올렸다.
 
其舅患痢 李氏嘗糞以占差劇 大米不能食下咽 力辦豆米蜜淸 晝夜作粥而進 시아버지가 이질을 앓자 이씨가 시아버지의 대변을 맛보고서 증세가 차도가 있을지 심해질지를 점쳤으며 대미(쌀밥)를 목으로 넘기지 못해 드시지 못하자 두미(콩)와 밀청(꿀)을 힘써 마련하여 밤낮으로 죽을 쑤어 올렸다.
 
至於二十年 舅享百歲而歿 葬祭盡誠 20년에 이르러 시아버지가 100세를 누리고 돌아가셨는데, 장례와 제사에 정성을 다하였다.
 
夫之二妹率十餘眷而來 同爨共織 和氣融然 鄕里伸訴官門 尙未旌美 輿情慊歎焉 지아비의 두 누이가 10여 명의 식구를 이끌고 왔는데, 함께 밥 지어 먹고 함께 길쌈하며 화기가 융성하였다. 향리 사람들이 관가에 거듭 호소하였으나 아직도 이 아름다운 일을 표창하지 않고 있으니 여론이 서운해 하며 탄식하였다